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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아래 설명을 이해하는 데 특별한 수학 기술이나 지식은 필요 없다. 고등학교 수학의 아주 기초만 알고, 새로운 것을 알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체라는 이름의 도깨비

대수적 구조인 체라는 이름만 들어도 겁이 난다면, 정말 두려워할 것 없다는 사실을 알아 두자. 제대로 된 각도에서 보면 체는 사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체는 임의의 집합 하나와,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이항연산 두 개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전부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보다시피 위험하거나 무시무시한 것은 전혀 없다. 이것을 알았으니 이제 겁내지 말고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체의 원소의 집합

임의의 집합을 T로 나타내고, 그 원소를 체의 원소라고 부르자. 믿어도 좋다. 체의 원소의 집합은 정말 아무것이나 될 수 있다. 모든 짝수의 집합일 수도 있고, 짝이 없는 양말을 모두 모은 집합일 수도 있고, 누군가 모아 둔 코끼리 인형일 수도 있다. 거의 유일한 조건은 집합 T가 공집합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집합이라면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을 테니까.

이항연산

이항연산이 무엇인지 바로 와닿지 않는다면 작은 맷돌을 떠올려 보자. 어떤 집합의 원소 두 개(그래서 이름에 ‘이항’이 들어 있다)를 넣고 손잡이를 살짝 돌리면 그 집합의 다른 원소 하나가 나온다. 이를테면 나눗셈이 좋은 이항연산의 예이다. 10 / 5가 얼마인지 궁금한가? 집합을 실수의 집합으로 하는 나눗셈이라는 이항연산(맷돌)을 가져오자. 맷돌에 먼저 10을, 다음에 5를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놀랍게도 2가 나온다.

우리의 두 연산을 덧셈과 곱셈이라고 부르고 ⊕와 ⊗로 나타내자. 이름에 속지 말자. 이 연산들은 우리가 평소에 쓰는 덧셈, 곱셈과 공통점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체의 원소가 어떤 대상이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 인형이나 양말에는 평소의 덧셈과 곱셈을 쓸 수 없다.

체의 연산

연산 ⊕와 ⊗는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정할 수는 없다. 이 연산들을 정하는 목적은 수에 쓰는 보통의 덧셈과 곱셈을 일반화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알다시피 체의 원소는 수뿐만 아니라 어떤 대상이든 될 수 있는데, 이런 원소에도 쓸 수 있도록 연산을 정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와 ⊗가 덧셈과 곱셈의 기본적인 뜻은 지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구조가 체가 되려면 연산이 만족해야 하는 조건 열 가지를 정한다. 이 조건들을 체의 공리라고 한다. 다음과 같다.

  1. 덧셈의 교환법칙: 체 T의 임의의 두 원소 a, b에 대해 a ⊕ b = b ⊕ a가 성립해야 한다.
  • 덧셈의 결합법칙: 체 T의 임의의 세 원소 a, b, c에 대해 (a ⊕ b) ⊕ c = a ⊕ (b ⊕ c)가 성립해야 한다.
  • 영원의 존재: 체 T에 원소가 하나 있어야 한다. 이것을 0으로 나타내자(수 0과 헷갈리지 말 것). 이 원소는 체 T의 임의의 원소 a에 대해 a ⊕ 0 = a라는 성질을 가져야 한다.
  • 덧셈에 대한 역원의 존재: 체 T의 각 원소 a에 대해, a ⊕ −a = 0이 성립하는 체 T의 원소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a로 나타내자.
  • 곱셈의 교환법칙: 체 T의 임의의 두 원소 a, b에 대해 a ⊗ b = b ⊗ a가 성립해야 한다.
  • 곱셈의 결합법칙: 체 T의 임의의 세 원소 a, b, c에 대해 (a ⊗ b) ⊗ c = a ⊗ (b ⊗ c)가 성립해야 한다.
  • 단위원의 존재: 체 T에 원소가 하나 있어야 한다. 이것을 1로 나타내자(수 1과 헷갈리지 말 것). 이 원소는 체 T의 임의의 원소 a에 대해 a ⊗ 1 = a라는 성질을 가져야 한다.
  • 곱셈에 대한 역원의 존재: 체 T에서 0이 아닌 각 원소 a에 대해, a ⊗ a−1 = 1이 성립하는 체 T의 원소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a−1로 나타내자.
  • 분배법칙: 체 T의 임의의 세 원소 a, b, c에 대해 a ⊗ ( b ⊕ c ) = ( a ⊗ b) ⊕ (a ⊗ c)가 성립해야 한다.
  • 자명하지 않음: 영원과 단위원은 같은 원소이면 안 된다. 즉 0 ≠ 1이다.

수학의 형식적인 표기를 연습해 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체의 공리를 수학자들이 쓰는 방식으로 적어 둔다.

  1. ∀a,b ∈ T   a ⊕ b = b ⊕ a
  • ∀a,b,c ∈ T   (a ⊕ b) ⊕ c = a ⊕ (b ⊕ c)
  • ∃0 ∈ T   ∀a ∈ T   a ⊕ 0 = a
  • ∀a ∈ T   ∃−a ∈ T   a ⊕ −a = 0
  • ∀a,b ∈ T   a ⊗ b = b ⊗ a
  • ∀a,b,c ∈ T   (a ⊗ b) ⊗ c = a ⊗ (b ⊗ c)
  • ∃1 ∈ T   ∀a ∈ T   a ⊗ 1 = a
  • ∀a ∈ T   ∃a−1 ∈ T, a ≠ 0   a ⊗ a−1 = 1
  • ∀a,b,c ∈ T   a ⊗ ( b ⊕ c ) = ( a ⊗ b) ⊕ (a ⊗ c)
  • 0 ≠ 1

공리가 너무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 공리가 무슨 뜻인지 알고 나면 모두 쉽게 이해된다. 처음 네 개는 덧셈의 익숙한 성질이고, 다음 네 개는 곱셈의 익숙한 성질로 처음 네 개와 아주 비슷하다. 아홉 번째 공리는 덧셈과 곱셈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 말해 준다. 열 번째만은 기술적인 조건에 가까운데, 체가 이상한 성질을 갖지 않도록 막아 준다.

뺄셈과 나눗셈을 따로 정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 연산들은 덧셈에 대한 역원을 더하는 것과 곱셈에 대한 역원을 곱하는 것으로 정한다. 예를 들어 4 − 2는 4 + (−2)를 줄여 쓴 것일 뿐이고, 4 / 2는 4 · 2−1을 줄여 쓴 것일 뿐이다.

체 둘러보기

이제 체라는 개념을 형식적으로 정의했다. 체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연산을 정의할 수 있는 임의의 대상을 초등 산술에서 하듯이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눌 수 있게 해 주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체

체를 생각해 내고 설명했으니 이제 실제로 체를 하나 만들어 보자. 먼저 체의 원소의 집합을 고른다. 아직은 코끼리 인형이나 양말로 너무 실험하지 말고 자연수를 체의 원소로 고르자. 정말 간단하게 하려고 수 0, 1, 2, 3, 4만 쓴다. 그러면 집합 T는 다음과 같다.

T={0,1,2,3,4}

이제 연산 ⊕와 ⊗를 잘 정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는 산술에서 이미 아는 덧셈과 곱셈을 빌려 쓴다. 다만 우리 체에서도 쓸 수 있도록 조금 고친다.

  • 연산 ⊕ 두 원소의 합 a ⊕ b는 a + b를 5로 나눈 나머지로 정한다. 그러면 우리 체에서 덧셈은 다음과 같다. 1 ⊕ 1 = 2    1 ⊕ 3 = 4    2 ⊕ 3 = 0    4 ⊕ 2 = 1 등.
  • 연산 ⊗ 두 원소의 곱 a ⊗ b는 ab를 5로 나눈 나머지로 정한다. 그러면 우리 체에서 곱셈은 다음과 같다. 1 ⊗ 1 = 1    2 ⊗ 2 = 4    2 ⊗ 3 = 1    4 ⊗ 2 = 3    등.

이것으로 끝이다. 이제 제대로 된 체를 하나 만들었다. 엉터리가 아니라 정말 체를 만들었는지 확인하려면 공리가 모두 성립하는지 확인해 보면 좋겠다.

  • 덧셈과 곱셈의 교환법칙과 결합법칙, 그리고 분배법칙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덧셈과 곱셈을 정한 방식에서 영원(여기서는 마침 수 0)과 단위원(여기서는 1)이 있고, 둘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나온다.
  • 이제 덧셈에 대한 역원과 곱셈에 대한 역원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집합 {0, 1, 2, 3, 4}의 각 수에 대해, 더하면 0이나 5(즉 우리 체에서는 0)가 되는 수가 같은 집합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 곱셈도 마찬가지이다. 이 집합에서 0이 아닌 각 수에 대해, 곱을 5로 나눈 나머지가 1(즉 우리 체에서는 1)이 되는 수가 있다. 예를 들어 4의 역원은 4이다. 4 · 4 = 16이고, 16을 5로 나눈 나머지가 1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역원도 찾아보자!

다른 체의 예

방금 원소가 다섯 개인 체를 만들었다. 같은 방법으로 원소의 개수가 소수인 다른 체도 만들 수 있다. 이런 체를 잉여류 체라고 하고 Zp로 나타낸다. 여기서 p는 체의 원소의 개수이다. 잉여류 체는 수학과 정보과학에서 아주 자주 쓰이고, 물론 시험 문제에도 자주 나온다.

원소의 개수가 소수가 아닌 체도 만들 수 있을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방금 보인 방법으로는 안 된다. 왜일까? 위의 방법으로 만든, 원소가 네 개뿐인 체를 생각해 보자. 그 체에서는 2 ⊗ 2 = 0이다. 즉 0이 아닌 두 수의 곱이 0이 된다. 체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체의 공리에서 직접 금지하지는 않지만 공리에서 꽤 쉽게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런데 체의 원소로 수 대신 다항식을 쓰면, 원소의 개수가 소수의 거듭제곱인 체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원소가 네 개인 체는 있다. 4는 2의 거듭제곱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소가 무한히 많은 체도 있다. 예를 들어 실수의 집합과 보통의 덧셈, 곱셈도 체를 이룬다. 이것은 실수뿐 아니라 유리수와 복소수에서도 성립한다. 자연수와 정수는 체를 이루지 않는다. 자연수에는 덧셈에 대한 역원이, 정수에는 곱셈에 대한 역원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멋진 이야기를 하자. 체가 수나 다항식, 아니 수학적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양말이나 코끼리 인형 등의 체도 만들 수 있다. 코끼리를 어떻게 더하고 곱할지 정하는 것이 유일한 문제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양말 여섯 짝으로 이루어진 체는 결코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6은 소수도 아니고 소수의 거듭제곱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말 열일곱 짝으로 이루어진 체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양말마다 번호를 붙이고(흰 양말은 0, 검은 양말은 1, 초록 양말은 2 등) 잉여류 체에서 한 것처럼 더하면 된다.

이것이 다 무슨 쓸모일까?

여기까지 읽었다면 체 같은 이상한 구조가 도대체 왜 필요한지 궁금할 것이다. 체는 아주 중요하다. 이론의 면에서는 계산, 즉 산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기술하고, 무엇보다 일반화하기 때문이다. 실용의 면에서는 수학이나 정보과학의 많은 문제를 체에서의 계산으로 생각하면 더 쉽게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한체는 CD나 DVD의 부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형대수 자체로 말하면, 체는 더 복잡하고 그만큼 훨씬 더 쓸모 있고 흥미로운 구조, 예를 들어 벡터공간의 초석이다. 벡터공간은 선형대수 전체의 기초를 이룬다.

이 글은 Lishaak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