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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포드의 법칙

1881년 미국의 천문학자 사이먼 뉴컴은 로그표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1로 시작하는 수가 실린 앞쪽 페이지가 뒤쪽 페이지보다 훨씬 많이 닳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8이나 9로 시작하는 수보다 1로 시작하는 수를 더 자주 찾았을까? 뉴컴은 이에 대해 짧은 글을 썼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57년이 흘렀다. 1938년 제너럴 일렉트릭의 물리학자 프랭크 벤포드가 같은 현상을 따로 발견했다. 그리고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서로 다른 20개 분야에서 수를 20,000개 넘게 모았다. 강 유역의 넓이, 물리 상수, 사망률, 신문 기사에 나온 수, 야구 통계…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수들이었다.

수의 첫째 자리에는 1부터 9까지 아홉 가지 숫자가 올 수 있다(첫째 자리에 0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각 숫자가 똑같이 자주, 약 11%씩 첫째 자리에 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벤포드가 모두 세어 보니 1이 첫째 자리에 오는 수가 약 30%였다. 숫자가 클수록 첫째 자리에 오는 경우가 적었고, 9로 시작하는 수는 5%도 되지 않았다. 이 현상을 오늘날 벤포드의 법칙, 또는 뉴컴–벤포드의 법칙이라고 한다.

왜 하필 1일까

주민이 100명이고 해마다 주민 수가 10%씩 늘어나는 마을을 상상해 보자. 해마다 마을의 주민은 반올림해서 100, 110, 121, 133, 146, 161, 177, 195, 214…명이 된다. 100명에서 200명이 되려면 주민 수가 100% 늘어야 하고, 그러려면 8년이 걸린다. 7년 뒤에는 195명이고, 8년째에는 200명을 넘는다.

200명에서 300명이 되려면 50%만 늘면 되고, 800명에서 900명이 되려면 12.5%만 늘면 된다. 첫째 자리 숫자가 클수록 마을은 그 숫자를 더 빨리 지나간다. 100명에서 1,000명이 되기까지 걸리는 25년 동안 주민 수가 1로 시작하는 기간은 8년, 2로 시작하는 기간은 4년, 3으로 시작하는 기간은 3년이고, 나머지 숫자는 1년이나 2년뿐이다. 9로 시작하는 기간은 마을의 주민이 985명인 1년뿐이고, 바로 다음 해에는 1,000명을 넘는다. 25년 가운데 8년은 32%로, 앞의 30%에 가깝다. 같은 비율로 늘어나는 수는 첫째 자리가 1인 상태로 가장 오래 머문다.

흥미롭게도 단위는 상관없다. 강의 길이를 킬로미터에서 마일로 바꾸면 모든 수가 바뀐다. 하지만 강의 길이가 벤포드의 법칙을 따른다면 마일로 나타내도 따른다. 1의 비율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각 숫자가 첫째 자리에 오는 비율

벤포드의 법칙에 따르면 수가 숫자 d로 시작할 확률은 다음과 같다.

P(d)=log10⁡(1+1d),

여기서 log10은 상용로그이다. 먼저 1에 대해 계산해 보자. 즉 d = 1을 대입한다.

P(1)=log10⁡(1+11)

괄호 안을 더한다.

P(1)=log10⁡2≒0.301

즉 수의 약 30.1%가 1로 시작한다. 나머지 숫자는 다음과 같다.

숫자 d P(d)
1 30.1%
2 17.6%
3 12.5%
4 9.7%
5 7.9%
6 6.7%
7 5.8%
8 5.1%
9 4.6%

모두 더하면 당연히 정확히 100%가 된다. 그래프의 점선은 19, 즉 모든 숫자가 똑같이 자주 나온다면 각 숫자가 차지할 비율을 나타낸다.

숫자 d가 수의 첫째 자리 숫자일 확률 P

공식이 있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이 법칙은 처음 두 자리에도 성립한다. 같은 공식의 d에 10부터 99까지의 두 자리 수를 대입하면 된다. 그래서 10과 11은 98과 99보다 훨씬 자주 첫머리에 온다.

log10⁡(1+110)≒0.041

log10⁡(1+111)≒0.038

log10⁡(1+198)≒0.0044

log10⁡(1+199)≒0.0044

수가 10으로 시작하는 경우는 약 4.1%, 11로 시작하는 경우는 3.8%인 데 비해, 98이나 99로 시작하는 경우는 약 0.44%뿐이다. 세계의 강의 길이 같은 데서도 마찬가지이다.

법칙이 성립할 때와 성립하지 않을 때

벤포드의 법칙은 대개 여러 자릿수, 즉 수십에서 수백만에 걸쳐 있고 자연스러운 증가나 측정으로 생긴 자료에서 성립한다. 하지만 범위가 넓다고 해서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개”라고 했다.

범위가 제한된 자료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어른의 키는 150 cm에서 200 cm 사이이므로 거의 언제나 1로 시작한다. 인위적인 한도가 있는 자료, 예를 들어 1만 원 단위이고 상한이 있는 ATM 출금액에서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화번호나 주민등록번호 같은 식별 번호에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이런 수는 개수나 측정값이 아니라 숫자로 쓴 이름일 뿐이다.

부정행위를 잡아내는 방법

수를 지어내는 사람은 모든 숫자에 비슷한 기회를 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어낸 송장이나 회계 장부에는 1로 시작하는 수가 적고 큰 숫자로 시작하는 수가 너무 많다. 이 때문에 감사인과 세무 당국은 이 법칙을 어디를 살펴봐야 할지 알려 주는 지표로 쓴다. 법회계학에서는 흔히 쓰는 도구이다.

하지만 부정의 증거는 아니다. 제품 하나를 7,900원에 파는 회사는 손님이 한 개씩 사 가면 7로 시작하는 송장이 많아지지만, 아무도 조작한 것은 아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더 자세히 들여다볼 만하다는 뜻일 뿐이다.

베른하르트 라우흐와 동료들은 2011년 연구에서, 유럽 연합의 회원국이 재정 적자 규정 때문에 1999–2009년에 유럽 연합 통계청에 보고한 거시경제 자료를 벤포드의 법칙과 비교했다. 유로존 국가 가운데 법칙에서 가장 크게 벗어난 것은 그리스의 자료였다. 그리스는 그 무렵 적자 자료를 왜곡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나라이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이긴 2009년 이란 대통령 선거 뒤에 통계학자들이 득표수를 분석했다. 하지만 선거에서는 첫째 자리 숫자가 알맞지 않다. 선거구의 크기가 비슷해서 득표수가 여러 자릿수에 걸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터 메베인은 투표함별 결과의 둘째 자리 숫자를 벤포드의 법칙으로 검정해서, 후보 네 명 가운데 세 명에게서 차이를 발견했다. 베른트 베버와 알렉산드라 스카코는 지역별 결과의 마지막 자리 숫자를 조사했다. 마지막 자리 숫자는 고르게 분포해서 각각 약 10%여야 하는데, 7이 17%, 5는 4%뿐이었다. 메베인 자신은 자기 분석이 조작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뒷받침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어느 경우도 부정의 증거는 아니었다.

자기 자료로 직접 확인해 보자. 예를 들어 통장 거래 내역이나 영수증의 가격으로 해 볼 수 있다. 자료가 없다면 2의 거듭제곱을 써 보자. 처음 1,000개의 거듭제곱, 즉 21부터 21000까지 가운데 1로 시작하는 것이 301개이고, 벤포드의 법칙도 301개라고 예측한다. 이보다 더 잘 맞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함께 보기

목차: 몬티 홀 문제, 생일 문제, 벤포드의 법칙, 확률판 거짓말쟁이의 역설, 넥타이 역설, 심프슨의 역설, 위양성의 역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 비추이적 주사위